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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峰 韓濩 선생 출생과 업적 덧글 0 | 조회 1,866 | 2016-09-23 00:00:00
관리자  

石峰 韓濩 선생 출생과 업적

 

한호韓濩의 본관은 청주淸州고 자는 경홍景洪 호는 석봉石峰이다

그의 가계는  그렇게 현달하지 못했다. 그와 관련된 대부분의 기록은 그의 시조를 5대조

한대기韓大基부터  시작하고 있는데 그의 벼슬은 군수였다. 군수를 한미한 직책이리고

치부하는 것도 부당하지만 현달한 관직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한호韓濩는 1543년(중종 38)개성에서 태어 났다.점치는 사람은 "옥토끼가 동쪽에서 태

어났으니 서울의 종이 값이 오를 것"이라고 예언했고 부모는 서성書聖으로 불리는 중국

최고의 명필 왕희지王羲之가 자신의 글씨를 주는 꿈을 두번이나 꾸었다고 한다.사실이라면 

이런 조짐들이 적중했다.

선생의 필적으로 석봉서법 석봉천자문 등이 모간模刊 되었고 친필은  별로 남은 것이 없

으나 그가 쓴 비문碑文은 많이 남아 있다. 글씨로는 허엽신도비許曄神道碑 (용인) 서경덕신

도비徐敬德神道碑 (개성) 기자묘비箕子廟碑 (평양) 김광계비金光啓碑 (양주) 행주승전비幸

州勝戰碑 선죽교비善竹橋碑 좌상유홍묘표左相兪弘墓表 등이있다.

양주에 있는 김광계비金光啓碑 황주서대수비黃注書大受碑 이윤식비李允湜碑 이별제공즙

비李別提公楫碑 고양에 있는 권도원수대첩비전면權都元帥大捷碑前面 기응세비寄應世碑

장단 윤감정변묘표액尹監正墓表額 과천 유용비柳容碑 허초당엽묘표음許草堂曄墓表陰

포천 이판서몽량비李判書夢亮碑 남양 홍영상섬비洪領相暹碑 용인 정의흥희린갈鄭義興姬

隣碣 정대헌유비鄭大憲裕碑 개성 서화담경덕비徐花潭敬德碑 합천 박사간소갈朴司諫紹碣

평양 기자묘비箕子廟碑 등을 썼다.

 

石峰 韓濩 선생 일화

 

 

石峰 韓濩는 그의 호로 1567년(명종22년) 과거를 앞두고 스승인 신희남愼喜男 선생이

누구나 볼 수 있고 눈비에 씼기고 비바람에 깍이면서도 우뚝하게 솟아 늠름하게 그 기상을

자랑하라는 뜻에서 석봉石峰이라는 호를 지어주었다고 한다.

한호의 행서 글씨,해서,행서,초서 등 각 서체에 능했던 그는 중국 서체의 모방에서

 탈피하여 호쾌하고도 강건한 서풍을 이루어 후의 김정희와  더불어 조선 서도의 쌍벽이 되었다.

 

한호는 임금에게 지우知遇를 받아 총애가 융숭했고 하사품이 끊이지 않았다.특별히 가평 군수에 임명되었는데 몇 년뒤 사헌부에서 탄핵했지만 추고만을 지시했다.

 

그가 공조 낭관이  되었을 때는 일상적인 업무를 규칙대로 처리하지 않아 파직되는 것이 마땅했지만 주상은 처벌하지 말라고 하명했으며,병이 위독해지자 어의에게 빨리 약을 가지고 가서 치료하게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임금은 오랬동안 애도했다.

 

한석봉필서첩韓石峰筆書帖에 담겨있는 이 '구용연'시는 한호의 자작시로,선조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벼루 구룡연에 대해 읊은 것이다.오른쪽의 글은 한호의 시에 대해 최립의 감흥을 옮겨 적은 것이다.서예와 관련된 선조 임금과 석봉 한호와의 관계를 이 벼루 시를 통해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금니로 쓴 글씨는 여느 글씨보다도 정성이 담기고 단아한 느낌이 크다.석

봉 한호의 근골을 강조한 강한 필치의 큰 글씨와는 많은 대조를 이루는 모습을 이 작은 금니

글씨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다.글씨면은 행이 고르지 못한 편으로 이는 후대의 장황 과정에서

일어난 것을 보인다.

                                                          ㅡ 옮겨온 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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