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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峰 韓濩 선생 일화 덧글 0 | 조회 1,791 | 2016-09-23 00:00:00
관리자  

 

石峰 韓濩는 그의 호로 1567년(명종22년) 과거 를 앞두고 스승인 신희남愼喜男 선생이

누구나 볼 수 있고 눈비에 씼기고 비바람에 깍이면서도 우뚝하게 솟아 늠름하게 그 기상을

자랑 하라 는 뜻에서 석봉石峰이라는 호를 지어주었다고 한다.

한호의 행서 글씨,해서,행서,초서 등 각 서체에 능했던 그는 중국 서체의 모방에서 탈피하여

호쾌하고도 강건한 서풍을 이루어 후의 김정희 와 더불어 조선 서도의 쌍벽이 되었다.

 

한호는 임금에게 지우知遇를 받아 총애가 융숭했 고 하사품이 끊이지 않았다.특별히 가평

군수에 임명되었는데 몇 년뒤 사헌부에서 탄핵했지만 추고만을 지시했다.

 

그가 공조 낭관이  되었을 때는 일상적인 업무를 규칙대로 처리하지 않아 파직되는 것이

마땅했지만 주상은 처벌하지 말라고 하명했으며,병이 위독 해지자 어의에게 빨리 약을

가지고 가서 치료하게 했다. 그가 세상을 떠 나자 임금은 오랬동안 애도했다.

 

한석봉필서첩韓石峰筆書帖에 담겨있는 이 '구용연'시는 한호의 자작시로, 선조 임금으로

부터 하사받은 벼루 구룡연에 대해 읊은 것이다.

오른쪽의 글은 한호의 시에 대해 최립의 감흥을 옮겨 적은 것이다.서예와 관련된 선조

임금과 석봉 한호와의 관계를 이 벼루 시를 통해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금니로 쓴 글씨는

여느 글씨보다도 정성이 담기고 단아한 느낌이 크 다.석봉 한호의 근골을 강조한 강한

필치의 큰 글씨와는 많은 대조를 이 루는 모습을 이 작은 금니 글씨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다.글씨면은 행이 고르지 못한 편으로 이는 후대의 장황 과정에서 일어난 것을 보인다.

                                                         

                                         ㅡ 옮겨온 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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