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봉 서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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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봉선생과 그 어머니 백인당 덧글 0 | 조회 2,096 | 2013-05-09 00:00:00
평전  



석봉 선샏의 자字는 경홍景洪 호는 석봉石峰,청묘淸妙이다.

선생은 조선조 중종 38년(1543년)11월 15일 현재 황해도 金川郡에서 청주 한씨韓氏 언공彦恭공과
수원 백씨白氏 사이에서 4남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석봉선생이 대성할수 있었던 것은 선생의 본디 지니고 있던 숨은 예술적 자질은 물론 그어머니 白忍堂님
의 자애롭고 엄격한 가정교육과 왕희지를 만나는 꿈을 두번이나 꿀만큼 서성書聖이라 불리는 왕희지를
표방하면서 피눈물나는 노력을 한 선생 본인의 불굴의 정신과 문예진흥에 대한 의지을 가진 선조왕의 배
려에서 書聖의 경지에 까지 오르게 되었다.

특히 떡장수 어머니와 한석봉은 유명한 교육적 일화와 교훈이 되어 40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초등학교 교과서 혹은 어린이를 위한 일화로 많은 사람들에게 가슴을 뜨겁게 해주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회자되고 있다.

어머니 백인당님은 조부로부터 천자문을 익힌 선생이 8세 되던해 명종 5년(1550년)에 서당에 입학 시켰다.
그후 선생 12살 되던해인 명종 9년(1554년)에 당대 시와 글씨에 뛰어났던 영계(瀯溪 愼喜男 1523~1593
강원도 감찰사 호조참의)의 문하생으로 입문시켰다.

영계선생의 문하생으로 입문하여 3년이 지난 어느날 한성부 서법 경연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뽑혀 시
글에 자신감을 갖게되자 어머니와 고향에에 대한 그리움으로 스승의 허락을 받고 집으로 오게 되었다.

선생이 집으로 돌아온 날도 변함없이 떡을 썰고 계시던 어머니는 돌아온 아들이 못마땅하여 냉담한 표정
으로
"훌륭한 선비가 되어 돌아오겠다는 약속은 어떻게 되었는냐?"
"예, 어머님과의 약속한대로 학업을 충분히 닦았다고 생각하기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면 불을 끄고 나는 떡을 썰겠으니 너는 글씨를 써라"
시간이 어느정도 흘러 불을 켜니 어머니의 떡은 한결 같으나 석봉이 쓴 글은 어떠하였는지 굳이 여기에서
설명하지 아니하여도 이글을 읽는 사람들은 그 결과를 다 아는 사실이다.부끄럽고 죄를 지은것 같은 석봉
은 "어머님 용서하십시요. 열심히 더 공부를 하겠습니다"하였다.
석봉선생의 스승 영계(영계(瀯溪 愼喜男 )는 자신의 스승인 청송(聽松 成守琛 1528~1564)과 휴암(休庵
白仁傑 1497~1579)등의 제자로 천거 하였고 그후 20세 까지 파주 파산서원坡山書院에서 공부를 계속
하였다.
-자료출처 : 석봉 한호의 생애 (빌행처 (주)청묘 2005년 11월 11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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